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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명언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

김영호 기자 | 기사입력 2021/11/26 [10:19]

[오늘의 한마디]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명언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

김영호 기자 | 입력 : 2021/11/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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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팅 선생은 ‘다양한 관점’을 가질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 사진=kofic 영화진흥위원회


“항상 무언가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 난 책상에 올라선단다.”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中

 

길을 걷다 노인에게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힘없는 노인을 못살게 구는 버릇 없는 사람이 생각날 것이다. 노인이 불쌍해 보이고, 그 사람이 한없이 못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 노인이 길을 물었는데 귀가 좋지 않아서, 그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를 크게 해서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는데도, 그 노인을 위해 큰소리로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노인에게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소리를 듣는 노인’에게 집중하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인식된다. 이는 사물을 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요즘같이 다양한 뉴스, 심지어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사건은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원칙으로 삼은 웰튼 아카데미에 한 선생이 새로 부임하며 시작된다. 위의 대사는 이 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문학 선생, 키팅이 한 말이다. 

 

키팅은 학교 기준에 맞지 않는 수업을 진행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시를 평가하는 교과서의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카르페디엠’ 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키팅은 웰튼 아카데미의 졸업생이기도 한데, 그는 과거 친구들과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사회’라는 이름 때문에 영화의 내용이 짐작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원제목 ‘Dead Poets Society’의 ‘Society’를 ‘사회’라는 뜻으로 직역한 일종의 번역 실수다. ‘Society’는 ‘사회’라는 뜻 외에도 ‘모임’이라는 뜻이 있는데, 영화 속에서 이는 문학 동아리의 이름이므로 ‘클럽, 동아리’ 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학생들은 키팅의 수업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들은 과거 키팅이 만든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고 그 모임을 이어나간다. 학생들은 엄격한 학교에서 낭만적인 일들을 감행한다.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짓고, 연극에 출연한다. 사회의 엘리트를 양성하려는 웰튼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의 이런 행적이 달가울 리 없다. 학교는 키팅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결국 그를 해고한다.

 

키팅은 ‘오늘을 즐기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어떤가. 미래를 위해 현재 하고 싶은 일들도 모두 포기한다. 오로지 ‘명문대 진학’이라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오늘’을 희생하는 데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카르페디엠’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시를 분석하고 해체해야 한다. 시를 음미할 시간은 없다. 그저 무슨 의미인지 외우고 비교할 뿐이다. 이 역시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 느끼는 감상을 포기하는 행위다.

 

오늘 먹은 점심이 무엇이었는지 기억 못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있다. 여유롭게 음미해야 하는 점심시간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넘겨버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미래의 안락함을 위해, 맹목적으로 오늘을 그저 넘겨버리고 있지는 않을까?

 

삶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은 중요하다. 같은 하루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하루로 비칠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삶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보는 교실, 강의실, 사무실, 일터의 풍경은 당연히 같을 수밖에 없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키팅의 말처럼, 책상 위로 올라서야 한다. 물론 책상 위로 올라서는 것은 ‘이상한’ 행위지만 100일, 200일, 300일을 같은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닐까. 

 

관점에 따라 사람은 죽어갈 수도, 살아갈 수도 있다. 만약 지금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기력함과 공허함을 느낀다면, 키팅의 말처럼 ‘책상에 올라서’는 행복을 위한 용기 있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북라이브=김영호 기자]

북라이브 /
김영호 기자
zerofive@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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