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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관리자] ‘미완성’의 미학

‘미완성’이 주는 효과

김영호 기자 | 기사입력 2021/12/24 [13:17]

[장치관리자] ‘미완성’의 미학

‘미완성’이 주는 효과

김영호 기자 | 입력 : 2021/12/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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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묘한 미소 때문에 ‘미완성’에 가까운 그림이라는 평을 받는다.  © 사진=위키백과


무엇이든 끝까지 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헬스장에 3개월 등록을 하고 3개월을 다니는 것,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 후 한 일기장을 밀리지 않고 전부 채우는 것, 그리고 만화, 소설의 완결을 기다리다가 모두 읽는 것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어려운 것은 궁금한 채로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다. 좋아하는 만화가 연재가 중단된 채 1년, 2년 이상 휴재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읽던 소설책을 마지막 10쪽을 읽지 못한 채 잃어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똥 싸고 뒤 안 닦은 기분’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결말이 어떻게 되건, ‘완결’을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는 한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작가는 결말을 독자들에게 주었다. 이것 하나만은 작가가 어려운 일을 한 것이고, 독자들은 결말이 궁금해 전정긍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작품의 구성 및 전개 방식에 대해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극문학은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야 하므로, 시작과 전개와 결말을 가져야 한다. 이 이후로 사람들은 완결된 하나의 작품에는 당연히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시인 루이 아라공은 작품의 시작보다 신비로운 것이 작품을 끝내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소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문장이다. 그러나 루이 아라공은 그보다 더 신비로운 힘을 지닌 것이 작품의 결말에 숨어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미완성’이 주는 미학적인 가치도 있다. 유명한 사례는 바로 ‘모나리자’의 미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년 오른손에 마비가 와서 팔레트를 잡고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없었다. 모나리자가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다빈치가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서다. 비록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그 미소를 보기 위해 오늘도 수십만 명이 프랑스를 찾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완벽주의자였지만, 조각을 만들다 종종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조각을 만들 수 없을 때 작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가끔 그가 만들다가 만, 여기저기 깨진 조각이 발견되는데, 이는 완성되지 못한 형태임에도 사람들에게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작품을 정상적으로 끝내지 않음으로써 작품에 독특한 문학적 기질을 부여한다. 그는 거의 ‘미완성’을 그의 글쓰기 기법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미완성의 글쓰기는 작가의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반영하며, 열린 텍스트를 지향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성을 열어준다. (‘작품의 완성과 미완성: 스탕달에 관한 연구’, 조성웅, 2015, 세계문학비교연구)

 

이렇게 ‘미완성’이 미학적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최근에 들어서다. 현대로 접어들며 예술은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예술가는 심지어 완성된 것을 의도적으로 미완성인 것처럼 꾸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열린 결말’이라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스위스의 미술사학자 요제프 간트너는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 형상화 이전의 단계로 미완성이 지닌 역동적인 아름다움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미완성’이 동아시아 예술과도 내적 연관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완성(논 피니토)의 미학적 의미, 김광명, 2014, ‘철학·사상·문화’]

 

동양화에는 ‘여백의 미’라는 것이 있다. ‘여백’은 대상의 형태보다는 내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내면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사고를 반영한다. 작가들은 대상을 간단히 표현하고 여백을 오히려 강조하여 더욱 풍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여백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사람이 마치 집 내부의 빈 공간에서 생활하듯 말이다. 24시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지금 세상에서, ‘미완성’이란 역동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미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북라이브=김영호 기자]

북라이브 /
김영호 기자
zerofive@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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